솔직히 ‘옵세션’은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됐어요. 피드에 자꾸 짧은 클립이 뜨는데, 하나같이 한 여자가 완전히 미쳐 있는 장면이라 결국 못 참고 봤거든요. 남편이랑 집에서 TV로 봤는데, 저는 그냥 소름 돋는 영화겠거니 하고 대략적인 줄거리만 알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불편하고 충격적이었고, 저랑 남편 둘 다 꽤 오래 여운이 남았어요.
콘텐츠 안내: ‘옵세션’에는 잔인하고 피가 많이 나오는 폭력, 훼손된 시신, 반려동물의 죽음, 자해, 약물 과다복용, 노출 장면이 나와요. 미국에서는 R등급, 한국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예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베어(마이클 존스턴)는 작은 악기 가게에서 일하는 소심한 청년이에요. 오랫동안 같이 일하는 친구 니키(인디 내버레티)를 몰래 좋아해 왔죠.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베어는 ‘원 위시 윌로(One Wish Willow)’라는 싸구려 장난감을 사요. 규칙은 간단해요. 부러뜨리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거예요. 베어는 니키가 세상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빌어요.
그리고 정말 이뤄져요. 니키는 곧바로 베어에게 푹 빠지고, 처음엔 베어에게 꿈이 이뤄진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니키의 사랑은 정상적인 사랑이 멈춰야 할 선을 계속 넘어가요. 스포일러 없이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누구보다 더’라는 말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게 이 영화의 (즐거움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핵심이거든요.
나머지 출연진은 악기 가게 식구들이에요. 쿠퍼 톰린슨이 친구 이안, 메건 로리스가 사라, 그리고 코난 오브라이언 쇼로 유명한 앤디 리히터가 가게 사장이자 사라의 아빠 카터를 맡았어요. 러닝타임은 109분이고, 커리 바커가 각본, 연출, 편집까지 다 했어요.
10억 원으로 6,900억 원을 번 영화
이 영화의 뒷이야기는 영화만큼이나 놀라워요. 커리 바커 감독은 20대 유튜버 출신인데, 이안 역의 쿠퍼 톰린슨과 함께 스케치 코미디 채널 ‘that’s a bad idea’를 만들었어요. ‘옵세션’은 2024년 ‘Milk & Serial’에 이은 두 번째 장편이고, 제작비는 감독 말로 많아야 75만 달러(약 10억 원) 정도였대요. 2024년 10월 LA 근교에서 단 26일 만에 촬영했어요.
2025년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서 처음 공개돼 관객상 2위에 올랐고, 이후 Focus Features가 약 1,400만~1,500만 달러에 배급권을 사들였어요. 토론토영화제 장르 영화 사상 최고 금액이었대요. 블룸하우스도 제작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2026년 5월 15일 미국에서 개봉하면서, 영화들이 거의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어요. 첫 주말 1,720만 달러로 3위로 시작했는데, 보통 공포 영화처럼 2주 차에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올라갔어요. 2주 차가 1주 차보다, 3주 차가 2주 차보다 더 잘 됐거든요. 결국 전 세계 5억 달러(약 6,900억 원)를 넘기며 Focus Features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됐는데, 큰 광고비보다 입소문의 힘이 컸어요. Focus Features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시즌을 제외하면 근래 가장 큰 2주 차 상승 폭을 기록했고, 연휴가 아닌 시기에 3주 연속 관객이 늘어난 건 ‘E.T.’ 이후 처음이었대요. 4주 차에도 7%밖에 떨어지지 않아 공포 영화 역대 최고의 4주 차 기록까지 세웠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젊은 관객과 소통하는 젊은 영화인의 예로 이 영화를 언급했을 정도예요.
평론가 반응도 관객만큼 좋았어요. 로튼토마토 약 93%, 메타크리틱 77점, 시네마스코어 A-를 받았는데, 공포 영화 관객이 원래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이라 꽤 높은 점수예요.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인디 내버레티
두 주인공 다 연기를 잘했지만, 단연 인디 내버레티가 주인공이에요. 정신이 나간 사람을 이렇게까지 잘 연기할 수 있나 싶었어요. 다정하고 거의 평범해 보이다가도 표정이 확 바뀌는 순간, 공기가 싸늘해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렇다고 만화 같은 악역도 아니에요. 그 밑에 진짜 니키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여서, 그게 오히려 모든 걸 더 끔찍하게 만들어요.
보고 나서 더 놀랐던 건, 이게 다 CG나 AI가 아니라는 거예요. 특수 분장과 배우 본인의 몸 연기만으로 만들어 낸 장면들이고, 보면 그게 느껴져요. 후반부에 몸과 자세로 보여 주는 연기는 정말 보기 힘들 정도인데, 그게 최고의 칭찬이에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나 ‘슈퍼맨 앤 로이스’에서 보셨을 수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에요. 이미 시애틀국제영화제 연기상과 애스트라 미드시즌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앞으로 더 받아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아요.
마이클 존스턴도 제 몫을 해요
마이클 존스턴은 더 어렵고 덜 눈에 띄는 역할을 맡았어요. 베어는 왜 그런 소원을 빌었는지 이해될 만큼은 호감이 가야 하고, 그 소원 때문에 살짝 화가 날 만큼은 한심해야 하거든요. 그걸 잘 해냈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꼬여 갈수록 베어의 공포가 진짜처럼 느껴졌어요. ‘틴 울프’의 코리 역으로 익숙하실 수도 있고, ‘X-Men ’97’에서 어린 네이선 서머스 목소리도 맡았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들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할게요. 그래도 몇 장면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베어가 자는 동안 니키가 그를 지켜보다가, 베어가 자기만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며 점점 무너지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장면 중 하나예요. 밤늦게 주차된 차 안에서의 대화가 최악으로 흘러가는 장면도 있고요. 또 다른 소원과 관련된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웃기다가 갑자기 웃을 수 없게 돼요. 마지막 부분은 모든 의미에서 난장판인데, 이것도 칭찬이에요. 이 장면들은 결말 해석 글에서 자세히 정리할게요.
아쉬웠던 점
초반이 느려요. 베어가 소원을 빌기 전까지 악기 가게, 친구들, 베어의 짝사랑을 보여 주는 데 시간을 꽤 쓰는데, 저는 언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나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소원을 빈 순간부터는 속도가 확 붙고, 끝까지 놓아주지 않아요.
설정 자체도 조금 익숙해요. 소원이 최악의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건 ‘원숭이 손’ 이야기처럼 오래된 아이디어고, 감독도 원숭이 손이 나오는 심슨 가족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어요. 이 영화를 살리는 건 연출이에요. 아이디어는 새롭지 않지만, 그게 두 사람 사이에서 풀려 가는 방식은 새로워요.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가 거의 베어의 시점에만 머물러서, 정작 자유의지를 빼앗긴 니키의 입장은 잘 보여 주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저도 보는 동안보다 보고 나서 더 그렇게 느꼈고, 맞는 지적이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잔인한가요?
꽤 잔인해요. 미국에서는 ‘강도 높은 유혈 폭력과 노골적인 노출’로 R등급을 받았는데, 정확한 설명이에요. 심하게 훼손된 시신이 나오고, 특히 한 살인 장면은 정말 잔혹해요. 니키가 온갖 역겨운 체액을 뒤집어쓴 채 같은 자리에 서서 베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는 장면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반려동물의 죽음도 굉장히 불편하게 그려져요.
그래서 비위가 약하시거나, 동물을 많이 사랑하시거나, 자해 장면에 민감하시다면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보기 힘든 장면 몇 개를 감수하고 정말 불편한 이야기를 볼 준비가 되셨다면, 볼 가치가 충분해요.
볼 만한가요?
네. 불편하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예요. 귀신보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심리 공포를 좋아하시거나, 웃다가 웃은 게 미안해지는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신다면 꼭 추천해요. 둘 다 잔인한 장면만 괜찮다면 연인이나 배우자와 함께 보는 영화로도 좋아요. 저희도 보고 나서 한참 얘기를 나눴거든요.
깜짝 놀래키는 재미나 가벼운 핼러윈 영화를 찾으신다면, 또는 잔인함과 동물 학대 장면이 정말 싫으시다면 넘기세요.
한국에서는 9월 2일 ‘옵세션’이라는 제목으로 극장 개봉했어요. 미국에서는 지금 피콕에서 볼 수 있고, 2026년 11월 17일부터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돼요. 디지털 구매·대여와 블루레이, 4K로도 나와 있어요.
가장 오래 남은 건 베어의 소원이 얼마나 단순하게 들리는지였어요. 누군가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 줬으면 하는 마음은 아마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봤을 거예요. 이 영화가 조용히 말하는 건, 억지로 만든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생각이 가장 끔찍한 결말까지 밀어붙여지는 걸 보면서,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공포 영화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걸 생각하게 됐어요.
